<문장과 순간 - 박웅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는 그만의 독특한 향기를 가진 작품이다. 책은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나’라는 존재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모든 이야기는 철저히 ‘일인칭 단수’ 시점으로 서술 되기 때문에 독자가 주인공의 내면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유의 몽환적이면서 철학적인 문체는 이 책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화자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환기 시킨다는 점이다. [돌베개]에서 화자는 대학 시절 짧은 사랑과 그 후 찾아온 이별의 순간을 회상한다. 누구나 한 번 쯤 경험했을 법한 지나간 사랑과 그로 인한 상실감은 독자로 하여금 화자의 감정에 공감하게 한다. 화자가 당시의 감정을 재현하려 애쓰는 모습은 지나간 기억의 흔적을 붙잡으려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아 있다.
[크림]은 인생의 아이러니와 불확실성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다. 약속 장소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황당한 사건 속에서, 화자는 인생이란 본래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가 삶에서 마주치는 혼란스러운 순간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저자는 이러한 경험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개인적인 기억을 보편적인 진리로 확장시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음악과 스포츠는 단순한 배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찰리 파커 플레이스 보사노바」]와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각각 재즈와 야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에서는 화자가 야구팀을 주제로 시를 썼던 과거를 회상하며, 일상 속에서 느꼈던 기쁨과 몰입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스포츠와 음악은 이처럼 화자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위드 더 비틀스] 역시 음악이 화자의 기억과 정서에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틀스 음악은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한 시절을 상징하는 정서적 촉매제가 된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특정 노래는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라카미는 이러한 음악의 힘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추억을 떠올린다.
<일인칭 단수>의 화자들은 모두 자신의 세계에 고립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들은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깊은 상처를 경험하거나, 애초에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카르나발]에서는 친구의 연인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도덕적 갈등을 탐구한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지막 단편인 [일인칭 단수]는 이러한 고독의 정수를 담고 있다. 화자는 자신을 철저히 ‘일인칭 단수’로 규정하며, 자신의 존재를 타인과 분리된 고독한 개인으로 인식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과도 닮아 있으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책을 관통하는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기억’이다. <일인칭 단수>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화자의 과거 회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기억은 항상 불완전하며, 그 속에는 모호함과 왜곡이 섞여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러한 기억의 본질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화자가 과거를 되새기며 느끼는 그리움과 후회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특히, [셰헤라자드]에서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이야기의 힘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기억과 이야기가 가진 힘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일인칭 단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문학 세계를 응축해 담은 작품이다. 이 책은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삶의 진리를 탐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책 속의 화자들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감정과 고민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과거와 기억을 돌아보고, 관계와 고독, 그리고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의 매혹적인 문체와 철학적인 주제들은 책을 읽은 것 이상의 경험이 되니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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